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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 공부해보아요

Brahms: 21 Hungarian Dances, WoO 1 - Transcription Joseph Joachim · Anne-Sophie Mutter · Lambert Orkis



Brahms: 21 Hungarian Dances, WoO 1 - Transcription Joseph Joachim · Anne-Sophie Mutter · Lambert Orkis


Brahms: 21 Hungarian Dances, WoO 1 - Transcription Joseph Joachim
브람스 헝가리무곡
Johannes Brahms (1833 - 1897) 독일

No. 1 In G Minor
No. 6 In D Flat
No. 7 In A Major

Anne-Sophie Mutter - Tango Song and Dance
℗ 2003 Deutsche Grammophon GmbH, Berlin
Released on: 2003-01-01


Anne-Sophie Mutter · Lambert Orkis

브람스 헝가리무곡
21 Hungarian Dance
21 Hungarian Dances
Book 1. (Published in 1869)
in G minor: Allegro molto
in D minor: Allegro non assai – Vivace
in F major: Allegretto
in F minor (F♯ minor for orchestra): Poco sostenuto – Vivace
in F♯ minor (G minor for orchestra): Allegro – Vivace
Book 2. (Published in 1869)
in D♭ major (D major for orchestra): Vivace
in A major (F major for orchestra): Allegretto – Vivo
in A minor: Presto
in E minor: Allegro ma non troppo
in E major (F major for orchestra): Presto
Book 3. (Published in 1880)
in D minor: Poco andante
in D minor: Presto
in D major: Andantino grazioso – Vivace
in D minor: Un poco andante
in B♭ major: Allegretto grazioso
in F minor: Con moto – F major: Presto
Book 4. (Published in 1880)
in F♯ minor: Andantino – Vivace
in D major: Molto vivace
in B minor: Allegretto
in E minor: Poco allegretto – Vivace
in E minor: Vivace – E major: Più presto



헝가리의 집시 음악을 피아노용으로 편곡한 것으로 4권 21편의 피아노 곡으로 되어 있다. 제1.2권은 1869년,제 3.4권은 1880년에 출반 되었으며, 특히 5번과 6번은 널리 알려져 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전부 21곡으로 원래 피아노용으로 편곡한 것으로 브람스가 헝가리의 집시 음악에 관심을 가진 것은 헝가리의 바이올린 연주가 에드알트 레메니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닐 때였다. 그가 음악을 연주하면 그 느낌을 조금씩 메모해 두었다가 곡으로 완성 시킨 것이 헝가리 무곡이다. 헝가리의 집시 음악적 요소를 많이 도입한 <헝가리 무곡>은 유랑 민족 집시들의 음악을 소재로 탄생 되었으며 피아노 연탄곡으로 꾸며져 전부 4권으로 되어있다.
단조에서 그 제4도음을 반음 올린다거나, 선율에 각종 장식을 더하거나 속도를 다양하게 변화시키거나, 느리고 하소연하는 듯한 부분과 빠르고 열광적인 부분을 대비시키거나, 싱커페이션을 두어 변화를 가져오는 등의 여러 가지 서법이 사용되고 있다. 집시의 이른바 차르다시(느린 라스라고 불리는 부분에 빠른 프리스라고 불리는 부분을 계속하는 춤곡)의 자유화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의 경우보다 자유롭게 되어 있다.

독일 작곡가 J. 브람스의 무곡집. 4집 21곡. 1869년 제 1·2집 10곡을, 80년 제 3·4집 11곡을 각각 출판하였다. 앞의 것은 그가 수집·정리한 헝가리 집시음악을 피아노 연탄용(聯彈用)으로 편곡한 것이 대부분이고 뒤의 것은 그의 창작작품도 포함되어 있으며 헝가리풍이라기보다 브람스풍의 작품집이다.
집시 특유의 선율과 리듬을 구사하여 당시 사회에 유행하던 토속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충족시켰고 이 가운데 제 5 번 f단조, 제 6 번 D장조가 유명하다.
독일 음악가 브람스는 정신적 혹은 정서적으로 헝가리와 아주 가까웠다. 브람스는 북 독일의 항구 도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헝가리는 독일 함부르크와는 많이 떨어진 세상이었다. 그런데 브람스는 어떻게 헝가리란 나라와 가까워졌고 어떻게 불후의 명작 '헝가리 무곡'이란 작품을 쓰게 되었을까?
브람스는 그의 나이 17세 때인 1850년에 헝가리의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인 레메니를 만났다. 브람스는 레메니와 친구로 지내면서 그를 통해 얻은 것이 적지 않았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첫째는 그를 통해 평생의 친구 요아힘을 알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그를 통해 헝가리 음악을 잘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슈만을 만나게 되는 나이 20세에 '헝가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란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또 54세 때인 1887년에는 자신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피날레 악장에 헝가리 집시 선율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보컬 4중주와 피아노를 위한 집시의 노래 등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헝가리 집시 선율에 대한 관심을 가장 집중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얘기한다면 그것은 바로 21편의 헝가리 무곡이다. 총 네 개의 세트로 된 21곡의 헝가리 무곡은 1869년에 첫 두 세트가 인쇄되었고 나머지 두 짝은 11년 후인 1880년에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 헝가리 무곡은 민속춤인 차르다슈(Csrdas)형태의 마자르 선율로 이뤄진 것이었고 피아노 이중주 형태였다.
1885년에 브람스는 이 가운데 세 가지 작품(제 1곡, 제 3곡, 제 10곡)만을 골라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해놓았다. 오늘날 우리는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전체를 오케스트라 곡으로 듣게 되었지만 사실은 나머지 18개 작품들은 저명한 작곡가 드보르자크를 위시해 할렌(Hallen), 유온(Juon), 팔로우(Parlow), 슈멜링(Schmeling), 갈(Gal), 숄룸(Schollum) 등 후대 음악가들이 편곡해 놓은 것들이다. 헝가리 무곡은 대체로 애수 가득한 느린 서주(Lass)로 시작하고 금세 2박자의 빠른 패시지로 돌입하는 전형적인 차르다슈인데, 집시의 애환과 우수가 깔린 느린 부분은 진한 노래로 굽이치며 빠른 부분은 발꿈치를 들리게 하고 머리칼이 서게 할만큼 싱그러운 흥취로 솟구친다.
특히 아름다워 대중적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제 4곡(이 음반에서는 제외되어 있다)과 제 6곡은 그야말로 차르다슈의 진수를 들려주는데 빠른 섹션의 기상은 아주 힘차고 현란하기까지 하다.


헝가리 민속음악에 맞춰 민속춤을 추는 사람들.

브람스 [헝가리 무곡]
브람스는 함부르크의 한 가난한 음악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여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지 4년만인 10세 때에 이미 공개 연주회를 가질 정도였다.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거리의 술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한편, 합창단을 지휘하고 작곡 편곡을 하기도 했다.
그에게 행운의 손길이 찾아든 것은 19세가 되던 해였다. 그 무렵 이 거리에 찾아온 헝가리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Eduard Remenyi, 1828-1898)와의 만남은 브람스의 음악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이듬해 브람스는 그와 함께 유럽 여러 나라로 연주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에서 그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뿌리며 유명한 작곡가들과 사귀게 된다.
쩨레라는 거리에서 반음 낮게 조율된 피아노를 고칠 시간이 없어 브람스는 끝까지 반음 올려 연주를 했다. 보통 솜씨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또 바이마르로 리스트를 찾아갔을 때, 리스트가 연주하는 동안 그만 졸아 버려 '무례한 놈'으로 낙인 찍힌 일도 있다. 그러나 이 여행으로 브람스는 요아힘, 폰 뵐로우, 리스트, 슈만 같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를 알게 되고 훗날 그들의 도움을 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 한 가지 이 여행에서 얻은 큰 수확이 [헝가리 무곡집](Ungarische Tanze]이다. 레메니와 여러 곳을 다니는 동안, 브람스는 그로부터 헝가리의 민요와 짚시의 음악 및 무곡 등에 관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소상하게 배웠다. 그리고 열심히 수집 정리하는 한편 몇 곡을 편곡하여 연주회 때 발표하기도 했다.
레메니와 헤어진 뒤에도 계속 각 지방의 멜로디를 수집 정리했다. 16년 후인 1869년에 브람스는 우선 열 곡의 피아노 연탄용(連彈用) [헝가리 무곡] 제1, 2집을 베를린의 짐로크사에서 출판했다. 뜻밖에도 악보는 큰 인기를 얻어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그러자 그에게 처음 헝가리 음악을 가르쳐 주었던 레메니를 비롯한 헝가리의 음악가들이 들고 일어나 브람스를 고소했다. 그렇지만 브람스는 애초 악보를 출판할 때 편곡이라고 못박았기 때문에 오히려 승소했다. 불쾌한 사연이 담기기는 했으나, 그래도 이어 제3, 4집을 출판했다. 이렇게 하여 전21곡의 [헝가리 무곡]이 생겨난 것이다.
그 중 제1, 3, 10번은 훗날 브람스 자신이 관현악곡으로 편곡했다. 전곡 가운데서 널리 알려진 작품은 제5, 6번이다. 제5번은 관현악뿐 아니라 바이올린 및 그 밖의 여러악기로 편곡되어 많은 음악 애호가의 사랑을 받아 오고 있다.

작품의 배경
브람스도 20대 청년시절 아직 작곡가로서 완전한 입지를 구축하기 이전에는 표제적 성격이 강한 몇 편의 음악들을 써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헝가리 무곡집]이다. 브람스의 초기를 대표하는 [헝가리 무곡집]은 오늘날 여러 가지 형태로 편곡되어 연주되고 있지만 그 원곡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연탄용으로 쓰여 진 것이다. 그것이 뒷날 오케스트라편곡으로 개작됨으로써 모든 연주단체들이 앙코르용으로 자주 연주하여 브람스 음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게 되었다.
브람스가 형가리 집시음악에 대하여 깊이 친숙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은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드 레메니을 알고 나서부터다. 그리고 [헝가리 무곡집]이란 피아노곡이 씌어지게 된 것도 레메니와의 관계를 떠나서는 절대로 생각할 수가 없으며, 따라서 레메니와의 관계를 밝혀 두는 것이 [헝가리 무곡집]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에두아르드 레메니는 브람스보다 3살이 연상이다. 그는 20대 초에 이미 유럽각국을 순회연주 할 정도로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레메니가 브람스의 고향인 함부르크에서 바이올린 독주회를 가진 것은 1832년, 즉 브람스의 나이 19세 때의 일이다.
헝가리 집시풍의 선율이 잔뜩 스며들어 있는 레메니의 바이올린 연주는 감수성 강한 청년 브람스를 단번에 사로잡고 말았다. 이 무렵의 브람스는 작곡가로서 보다는 피아니스트로 두각을 나타내며 함부르크에서 피아노 연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함부르크에서 레메니의 연주를 듣고 집시선율에 매혹되어버린 브람스는 그와 친교를 나누게 되면서 그들의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브람스는 레메니의 피아노 반주를 자청했고 레메니도 그 제의를 흔쾌히 받아를여 이 두 사람의 청년음악가들은 1853년에 대대적인 연주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브람스의 나이20세 때에 이루어진 이 연주여행은 브람스에게는 난생 처음 있은 일이어서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은 여행이었다.
함부르크를 기점으로 해서 시작된 브람스와 레메니의 연주여행은 하노버를 거쳐 바이마르로 이어졌고, 뒤셀도르프에 머물고 있던 로베르토 슈만과 운명적인 첫 대면을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브람스의 일생을 통해서 통절한 연애심리를 자극했던 슈만의 부인 클라라와도 첫인사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 때 클라라는 브람스보다 13세가 많은 33세였고, 슈만은 그보다 9살이 더 많은 42세였다. 슈만이 청년 브람스의 재능을 간파하고 그가 주관하던 음악 평론지에 ‘천재의 출현’을 알린 것은 바로 그 직후의 일이다.
이러한 일련의 연주여행을 통해 레메니는 브람스에게 집시음악의 선율을 가르쳐 주었다. 브람스가 집시음악을 받아들이면서 가장 주의 깊게 연구한 것은 그 독특한 리듬이었다. 그리고 브람스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마음속에 새겨 두면서 나름대로의 악상으로 다시 정리하여 피아노 연탄용 무곡으로 써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브람스가 [헝가리 무곡집]을 쓰기 시작한 동기이자 시발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21곡으로 되어있는 [헝가리 무곡집]이 일시에 씌어진 것은 아니다. 20세 때부터 레메니를 통하여 접하기 시작한 집시 리듬은 브람스를 깊이 자극하여, 뒷날 그가 비인에 정착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집시 무곡을 피아노 연탄용으로 작곡해 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제1집5곡, 제2집5곡을 묶어 36세 때에 처음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이것이 헝가리 무곡집 제1권(전10곡)이다. 이 무곡 때문에 출판되자마자 그 독특한 리듬과 우수어린 집시선율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고, 악보는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그러나 헝가리 계통의 음악가들은 브람스의 음악을 표절이라 하여 시비를 걸고 나섰다. 이 문제는 나중에 출판권 확인을 위한 법정소송으로까지 확대되었지만, 어디까지나 편곡으로 발표했기 때문에 결국은 브람스의 승리로 결말이 났다. 브람스의 전 작품 가운데 유독 [헝가리 무곡집]만큼은 작품 번호가 붙어있지 않은 것도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시끄럽게 되자 브람스는 나머지 11곡의 무곡집 제2권은 출판을 보류하다가 11년이 지난 1880년(47세)에야 비로소 햇빛을 보게 되었다. 브람스가 20세 때부터 쓰기 시작한 헝가리 무곡 전21곡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에는 이처럼 27년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가능했던 것이다.



브람스 헝가리 춤곡집
Ungarische Tänze
헝가리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이 춤곡은 사실 헝가리 본토의 음악이라기보다는 헝가리에 정착한 집시들의 음악을 차용한 작품이다. 집시의 민속 선율을 차용한 스물 한곡의 작품이 총 네 개의 곡집에 나눠 실려 있다. 각각은 모두 2~3분, 길어야 5분 구성의 짧은 곡이다. 피아노 연탄을 위한 곡으로 먼저 발표되었고 후에 관현악을 위한 곡으로 편곡되었다. 일부는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되어있기도 하다.
1853년에 브람스는 헝가리의 유명 바이올린 주자 레메니의 반주자가 되어, 당시 20세의 청년이었으면서도 함께 어울려 각지를 연주 여행했다. 브람스의 민요에의 관심은 이 때 레메니에 의해 심어졌으며, 자진해서 연구와 연찬(研讚)을 쌓았다. ‘눈물에 의해서만 헝가리인은 유쾌하다’라는 말이 있지만, 흐느껴 우는 우수와 광란의 환희는 특유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헝가리 무곡」은 전4권 21곡으로 이루어진 피아노의 연탄곡집으로, 앞의 두 권은 1869년 36세 때 발표되었고, 뒤의 두 권은 1880년 47세 때에 간행되었다. 그리고 앞의 두 권은 1872년 작곡가 자신이 피아노 독주곡으로 고쳐 썼으며, 그 중 어떤 것은 요아힘이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편곡했다. 곡은 헝가리에 있어서의 마자르인 국민 무곡조를 바탕으로 했으며,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와 함께 국민음악의 뛰어난 전형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선율은 헝가리의 무곡 형식 차로다시가 사용되었으며, 순정 · 우울 · 비애를 나타내는 라산 조와, 넘치는 정력 · 야성 · 광분을 나타내는 빠른 프리스카 조의 두 개가 교묘하게 안배되어 곡의 기복에 따라 변화한다. 제1 · 제3 · 제5 · 제6번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스물 한곡의 피아노 연탄용 곡집
피아노 연탄용 원곡이 쓰인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1852년부터 1869년까지 그가 접했던 헝가리 집시 음악의 메모와 아이디어스케치를 기반으로 작곡되었다고 한다. 첫 출판은 모두 피아노 연탄용이었는데, 제1집에는 1~5곡이, 제2집에는 6~10곡이 수록되어 1869년에 출판되었으며, 제3집에는 11~16곡이, 제4집에는 17~21곡이 수록되어 1880년에 출판되었다. 이후 브람스는 직접 1~10곡을 피아노 독주용으로 만들었고, 1889년에는 자신이 스스로 연주하여 제1번의 독주의 레코딩을 남기기도 하였다. 1, 3, 19곡은 관현악용으로 편곡하였는데, 그가 교향곡에 즐겨 사용한 2관과 현 5부, 팀파니 편성에 더하여 트라이앵글과 큰북, 심벌즈 등이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나머지 열여덟 개의 곡은 많은 작곡가와 지휘자 등에 의해 관현악곡으로 편곡되었다. 제1집과 제2집의 초연은 작품이 출판된 해인 1868년의 11월 1일, 한 개인적 사교모임에서 브람스와 클라라에 의해 이루어졌다. 제3집과 4집 역시 곡집이 출판된 해인 1880년의 5월 3일, 브람스와 클라라에 의해 개인적 사교모임에서 초연되었다. 공개적인 초연의 기록이 있는 것은 1882년 5월 함부르크에서 이루어진 제4집뿐이며, 브람스가 관현악용으로 편곡한 세 곡은 그가 직접 지휘하여 1874년 2월 5일,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의 연금 기금을 위한 음악회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국적 정서와 피아노 연탄 유행에 힘입어
제1집이 출판될 무렵, 집시 음악은 이국적 정서를 담은 작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게다가 일반 가정집에도 피아노가 많이 보급되어 연탄 연주가 유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출판물은 예상보다 더 큰 판매고를 올리게 되었다. 짐로크의 출판사는 이 수익에 힘입어 드보르자크에게 또 다른 이국적인 춤곡인 〈슬라브 춤곡집〉의 작곡을 의뢰하였을 정도였다.


레미니와의 연주여행 그리고 표절 논란
브람스는 1852년 헝가리계 바이올리니스트인 에두아르드 레메니(Eduard Remenyi)의 함부르크 독주회를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아, 1853년 그와 함께 연주 여행을 떠나게 된다. 브람스는 열아홉의 청년이었고 아직 무명에 가까웠지만 그보다 세 살 많은 레메니는 이미 유명한 음악가였다. 그 덕에 브람스는 독일 주요 도시에서 많은 연주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도중 레메니의 소개로 평생의 친구가 될 요제프 요아힘을 만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스승이 될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를 소개받은 것도 이 여행 중이었으니, 브람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레메니는 브람스에게 집시 음악, 혹은 집시 스타일이 도입된 연주를 많이 들려주었고, 브람스는 그것들을 메모하였다가 후에 곡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제1, 2집이 출판된 후에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훔쳤다며 저작권 침해를 주장한 레메니의 입장도 설명이 된다. 브람스의 악보를 낸 출판사가 이 문제를 재판으로까지 끌고 간 이 사건은, 브람스가 작곡이 아닌 편곡이라고 발표하여 작품번호도 붙이지 않았으며 원작자가 분명치 않다는 이유로 레메니의 패로 끝났다. 이 사건을 의식했는지 이후 출판된 제3집과 4집에는 브람스의 순수 창작곡도 들어가 있다. 이 뒷부분의 작품들 때문에라도 〈헝가리 춤곡집〉을 단순한 편곡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 집시 선율과 집시적 요소를 담고 있는 고전적 음악 형식은 브람스의 성향을 여실히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