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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 공부해보아요

Schumann 5 Stücke im Volkston(5 Pieces in Folk Style), Op.102

Schumann 5 Stücke im Volkston(5 Pieces in Folk Style), Op.102
슈만 5개의 민요풍의 소품 Op.102
Schumann, Robert 1810~1856

No. 1. Mit Humor
No. 2. Langsam
No. 3. Nicht schnell, mit viel Ton zu spielen
No. 4. Nicht zu rasch
No. 5. Stark und markiert


Killmayer & Schumann ℗ 2010 Genuin Released on: 2010-10-26

Nicolas Altstaedt · Jose Gallardo
     
슈만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민요풍의 5개의 소품
Fünf Stücke im Volkston für Violoncello und Klavier, Op.102
슈만은 이 곡을 1849년에 완성하고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 Andreas Gabau에게 헌정하였다. Gabau는 이 곡을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과 함께 그녀의 남편의 40번째 생일인 1850년 6월 8일에 초연하였다. 이 곡은 다섯 개의 성격 소품들(Character pieces)로 이루어져 있다. 슈만은 이 곡들의 중점을 기교적인 화려함 보다는 멜로디의 흐름과 표현력을 두었다.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각 소품의 테마는 그의 아이디어로서 기존에 존재하는 민속 멜로디는 아니다. 다섯개의 소품들은 모두 단순하고 간결하지만 제 각각의 뚜렸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불규칙한 리듬과 악센트, 그러나 노래하는 듯한 멜로디를 사용한 슈만은 민요들이 가지고 있는 생동감과 열정을 이 5개 소품을 통해 표현하였다.

창작 의욕을 다시 회복하다
슈만의 〈민요풍의 5개의 소품〉은 그가 깊은 우울증에서 벗어나 창작의 의욕을 다시 회복하던 1849년에 작곡된 작품이다. 절친한 음악적 동지였던 첼리스트 안드레아스 그라바우의 요청으로 15일 만에 완성하였으며, 그에게 헌정하였다. 이듬해 슈만의 40세 생일을 축하하는 모임에서 그라바우와 클라라의 연주로 비공식 초연되었다.


독특한 리듬으로 그려낸 소박한 생명력
슈만은 이 작품에서 실제 민요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독일민요가 가진 소박함과 강건함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노래하듯이 서정적이고 우아한 선율을 사용하면서도, 불규칙한 리듬과 독특한 악센트를 사용함으로써 역동적인 느낌을 연출하였다. 이 독특한 리듬이 바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으로, 소박하고 따뜻한 선율에 쾌활하고 강건한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슈만 특유의 섬세한 낭만적 시정이 민요풍의 소박한 매력과 어우러져 독특하면서도 더없이 유쾌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 음악세계 & 음악사연구회(사)

작곡 연도: 1849년 4월 13일 ~ 17일 / 작곡 장소: 드레스덴
출판/판본: 1851년 9월, 카셀의 루크하르트 출판사. 자필악보 스케치가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됨.
헌정, 계기: 요한 안드레아스 그라바우를 위해서 작곡함.
초연 연도: 비공개: 1850년 6월 8일 / 초연 장소: 라이프치히
초연자: 그라바우: 첼로, 클라라: 피아노
악기 편성: 첼로(대신 바이올린도 가능), 피아노






악장 구성
1곡 Vanitas vanitatum(헛되고 헛되며), Mit Humor(유머를 지니고)
A단조 2/4박자, A - B - A - C - A - 코다의 론도 형식으로 구성됨. 규칙적인 움직임의 A부분과 아르페지오에 3번 겹치는 화음이 붙는 B, C부분이 대조적으로 쉼없이 이어짐. 코다부분에서는 A부분을 중심으로 진행함.
전도서 1장 2절을 인용한 부제가 붙어 있는 1곡은 경쾌한 론도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통통 튀는 리듬의 론도 선율을 첼로가 연주하면서 음악이 시작된 뒤, 명쾌한 화음으로 구성된 다른 두 개의 선율이 이어지고, 이 세 개의 선율들이 서로 대비되고 반복되면서 더없이 즐거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 곡은 a-b-a-b'-a(-coda)의 변형된 론도 형식. 지시어 앞에 달린 부제, 'Vanitas Vanitatum'은 구약의 라틴어 번역본에 나오는 어구이고 영역은 'vanity of vanities(헛된 것들 중에서도 헛된 것; 보통 '헛되고 헛되도다' 정도로 번역하는 것 같다)'. 슈만은 직접적으로는 괴테의 시 'Vanitas! Vanitatum Vanitas!'에서 따온 것이고, 다시 괴테는 거의 구약의 전도서(Eccelsiastes)에서 제목과 내용의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시 자체의 주지는 신앙적인- 신앙에 귀의하라는-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 음악은 리듬감을 잘 살리는 게 요점.

2곡 Langsam(느리게)
F장조 2/4박자. A - B - A' - B'로 구성된 2부 형식임. A부분은 첼로가 선율을 연주하고 피아노는 으뜸음의 베이스 부분이 진행함. B부분은 첼로의 선율로 제시되며, 선율미 중심으로 진행함.
자장가를 연상시키는 느릿한 선율을 첼로가 연주하면서 음악이 시작된다. 피아노가 지속적으로 연주하는 페달음은 잠에 빠진 듯한 몽롱한 안정감을 준다. 이러한 몽롱함은 첼로가 연주하는 우수 어린 선율에 의해 분위기가 전환된다. 동경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선율은 선율의 음색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꿈의 세계를 그려낸다. 자장가를 연상시키는 첼로 선율로 시작하는 2곡은 잠에 빠진 듯한 몽롱함을 자아낸다.
* 무정형의 복합2부 형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A-B-A'-B' 꼴이긴 하지만 B가 A와 완전히 대비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론도처럼 자장가풍의 주제 a가 반복되면서 네 도막이 모두 a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음악적으로 가장 쉽기 때문에 이걸 제대로 못하면 음악이 적성이 아니다, 혹은 음악성은 타고 나지 못했다고 봐도 된다. 하지만 음악에서도 종종 평범한 데 진리가 있는 법이어서 전곡 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름다운 음악이다.

3곡 Nicht schnell, mit viel Ton zu spielen(빠르지 않고, 풍부한 음으로 연주한다)
A단조 6/8박자. A - B - A - 코다의 3부 형식으로 구성됨. A부분은 피아노의 선율로 주제가 제시됨. 중간부인 B부분은 A장조로 진행함. 코다부분에서는 피아노 왼손 부분이 오스티나토 형태로 등장함.
피아노가 독특한 리듬으로 반주하는 동안 첼로가 우수 어린 선율을 연주한다. 첼로의 선율은 슬라브 민요를 연상시키는 애상적이면서도 열정적인 느낌을 담고 있다. 중간부분에서는 첼로가 고음으로 밝고 목가적인 선율을 연주하면서 분위기를 전환한다. 피아노는 페달 포인트를 지속함으로써 몽환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다시 첼로가 슬라브풍의 애조 어린 선율을 반복한 뒤, 코다로 이어져 피아노가 오스티나토 베이스를 반복하면서 악곡을 마무리한다. 깊고 우아한 첼로의 음색과 피아노의 감각적인 진행이 어우러져 환상적이면서도 긴 여운을 남기는 아름다운 곡이다.
* 이것도 무정형의, 혹은 변형된 3부 형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략 a-b-c-a-c의 꼴이고 요점은 b가 클라이맥스이면서 다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c는 연결부 내지 도막의 종결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 b는 소리내기도, 노래하기도 가장 어려운데 지시어 'mit viel Ton'은 전곡에 걸쳐서 적용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b를 가장 염두에 둔 것이라고 봐도 좋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즉, b가 중간부의 자리에 들어가 있긴 하지만 a-b를 '강-약'이 아니라 '강-강'으로, 최대한 풍부한 울림을 가지고 연주해야 한다는 것. 이어지는 c는 보다 잔잔하게, 긴장을 이완시키고 감정을 흘려보낼 수 있는 악상으로 되어있다는 점이 우리가 이것이 슈만의 본래 의도라고 생각하는 2번째 근거가 된다.

4곡 Nicht zu rasch(너무 서둘지 말고)
D장조 4/4박자, A - B - A' - 코다 형식으로 구성되었으며 아르페지오의 유니즌으로 시작함. A부분은 첼로의 선율로 진행함. A부분과 대조적인 중간부인, B부분이 이어짐.
피아노와 첼로가 유니슨으로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면서 단호한 느낌으로 음악을 시작한다. 뒤이어 첼로가 역동적인 선율을 힘차게 제시하고, 첼로의 주도로 열정적인 음악이 전개된다. 중간 부분에서는 차분하고 투명한 음악으로 대조를 이룬다. 긴 호흡의 서정적인 단조선율이 연주되면서 앞서의 흥분된 느낌을 가라앉힌다. 다시 첫 부분의 격정적인 선율로 돌아와 힘차게 마무리된다. 슈만의 원숙한 감각이 빛을 발하고 있는 음악이다.

5곡 Stark und markiert(힘차고 확실하게)
A단조 2/4박자. 첼로와 피아노의 분명한 선율로 진행함. 재현부에서 코다까지 부분은 기교적인 선율미를 강조하는 형태로 진행함.
뚜렷한 주제선율과 생동감 넘치는 전개로 역동적인 피날레를 만들어내는 악곡이다. 첼로가 애조를 띠면서도 정열을 담은 선율을 연주하면 피아노가 이에 응답하면서 음악이 시작된다. 첼로와 피아노가 서로 긴밀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분위기를 점차 고조시키며 중간 부분으로 이어진다. 중간부분에서는 첼로의 음역을 폭넓게 활용함으로써 더욱 격정적으로 절정을 향해 질주한다. 재현부에서는 기교적인 선율미를 강조하고, 현란한 기교의 코다로 화려하게 마무리된다.





낭만주의자로서의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은 낭만주의를 충분히 꽃피우는데 누구보다 공이 큰 작곡가이다. 어느 때인가 한 비평가가 "왜 당신은 정통 소나타를 쓰지 않습니까?" 하고 물으니 슈만은 격한 어조로 "어떤 사상이든 이미 형성되어 있는 형식에 꼭 들어맞아야 한다는 말이오? 모든 예술작품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의의와 형식이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내용과 사상이 형식을 결정할 뿐 그 역(逆)은 아니오!" 라고 답을 했으며 이런 그의 주장은 분명 낭만주의란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슈만도 '피아노 소나타'라고 이름 붙은 곡을 세 곡 썼지만 환상적이고 정열에 넘쳐 종래의 소나타 관념에는 부합하지 않았다. 사실 슈만은 소나타나 교향곡 등의 거창한 구성을 가진 곡에서 진가를 발휘하기보다는 피아노 소품이나 가곡 등에서 타고난 천재성과 낭만성을 발휘했습니다.
교향곡은 클라라와 결혼한 후 아내의 끈질긴 권유를 받고서야 겨우 손을 댄 분야이니 슈만의 행보의 주축이 어디에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슈만의 부계에는 유전적인 정신적 질환이 있었던 듯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사망한데 이어 누이도 19세 때 자살했으며, 슈만 역시 최후를 정신병원에서 맞이 했다. 그를 몹시도 괴롭혔던 환청, 환각, 망상 등의 이상체질과 격정에 빠지기 쉬운 과민한 기질이 오히려 변화와 다양성, 때로는 역설을 특징으로 하는 낭만주의적 예술 표현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 도대체가 낭만주의란 그다지 건강한 이즘(ism)인 것 같지는 않다. 슈만은 스스로를 가리켜 '슈베르트와 브람스의 중간에 위치한 낭만주의의 절대적 신봉자'라고 말했다.

♧ 어린 시절의 슈만
독일 츠비카우에서 4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세 때부터 거의 자기 스타일로 피아노를 치거나 작은 무곡풍의 곡을 써서 음악적 소양이 풍부함을 나타냈다. 12세 때 <시편 제150번>을 작곡하였으며, 스스로 조직한 아마추어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초연까지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서점을 하고 있어서 일찍부터 문학에 심취했고, 이것이 훗날 그가 음악 평론가로서도 일가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슈만이 16세 때에 미망인이 된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문학이나 음악을 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아들을 라이프치히 대학의 법과로 보냈다. 그러나 그 도시는 어머니의 꿈을 이루기에는 알맞지 않은 곳이었다.음악 활동이 너무나도 활발했던 도시였기 때문이다. 슈만은 차츰 음악에 깊이 관계하여 친구와 실내악을 즐기거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연주회에 자주 다녔으며,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의 작품을 가까이했다. 또한 하이델베르크에서는 법과교수 티보가 음악론저서까지 펴낸 사람으로, 음악 실천면에서도 학생과 함께 팔레스트리나의 고전대위법을 연구하는 서클의 지도자였던 점도 슈만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결국 슈만은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고, 피아노 교수 비크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리고 비크 교수의 집을 드나드는 동안 슈만과 비크 교수의 딸인 클라라와의 사이에서는 어느새 사랑이 싹터 갔다.



♧ 슈만의 정열적인 사랑
비크 교수는 두 사람의 결혼을 완강히 반대했으나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 비크에 대해 젊은 두 사람은 부친의 허락없이 결혼할 수 있도록 재판으로까지 몰고 갔으며, 40년 9월 12일 겨우 결혼을 했다. 아내 클라라와의 정열적인 연애는 음악사상 유명한데, 이러한 인생의 큰 전환과 때를 같이 하듯 슈만의 창작은 피아노음악에서 <가곡의 해>라 불리는 성악작품으로 집중되어갔다. <리더크라이스> <시인의 사랑> <여자의 사랑과 생애>를 비롯해 <미르테의 꽃>등 가곡집의 걸작이 이 해에 완성되었다.
그 뒤에도 41년 <교향곡의 해>, 42년 <제1차실내악의 해>, 43년 <오라토리오의 해>라고 하는 집중적·체계적인 창작자세를 보였다. 슈만이 활동했던 장소를 보면 본거지는 44년까지의 라이프치히이지만, 44년 말부터 50년 9월까지 드레스덴시대, 그리고 50년 9월부터는 뒤셀도르프시대가 된다. 마지막 말년의 2년간은 청각이상과 환각증상에 시달리면서 본 교외 엔데니히의 정신병원에서 혼자서 살았으며, 56년 7월 29일 46세로 생애를 마쳤다.

♧ 슈만의 음악에 대한 열정
슈만의 음악에의 정열은 대단했다.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리라 굳게 마음먹고 하루 7시간씩 연습하며, 실력 연마에 힘을 쓰던 슈만은 24세 때 갑자기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과 약지손가락에 마비 증세가 나타나기에 이르렀고, 고민 끝에 자신이 발명한 피아노 숙달 속성기를 손가락에 끼우고 더욱 맹렬히 연습한 그는 '불굴의 예술혼'이라는 칭찬을 들었지만, 결국 연주자로서의 희망을 버려야만 했다.
절망한 그는 작곡, 지휘, 평론의 길을 택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슈만의 이름을 높이게 된 셈이 되었다. 특히 음악 비평가로 거의 만점에 가까웠던 슈만은 쇼팽이나 브람스 같은 위대한 음악가들을 세상에 처음 소개한 사람이기도 하다. 10여년에 걸쳐 혼자 힘으로 '음악 신보'를 발행한 그는 훌륭한 평론을 많이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슈베르트, 쇼팽, 브람스 등을 이 영광스러운 무대에 소개했던 것이다.
그가 빈을 여행할 때 슈베르트의 형집을 방문했고, 거기서 남겨진 악보의 산더미를 보고 감격하며, 정리했던 곡이 유명한 '제 7번 C 장조'이라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게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슈만은 생전에 사람들에게 그다지 인기 있는 존재가 아니였고, 그의 음악 또한 썩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살아있는 동안 별로 햇빛을 보지 못한 작곡가 중에서도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슈만입니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아내 클라라와 동행 연주 여행을 할 때면 사람들이 클라라의 음악성만 인정해 주어 그가 많이 좌절했다고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