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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 공부해보아요

Quintetto No. 4 in Re Maggiore "Fandango" per Corda e Chitarra, G. 448: Grave Assai - Fandango Jordi Savall · Rolf Lislevand · Le Concert des Nations

Quintetto No. 4 in Re Maggiore "Fandango" per Corda e Chitarra, G. 448: Grave Assai - Fandango
Jordi Savall · Rolf Lislevand · Le Concert des Nations


Boccherini: Quintetto No. 4 in Re Maggiore "Fandango" per Corda e Chitarra, G. 448
보케리니 기타 오중주 4번 G.448 판당고
Boccherini, Luigi 1743~1805 이탈리아

1. Pastorale
2. Allegro maestoso
3. Grave assai - Fandango

Luigi Boccherini: Fandango, Sinfonie & La Musica Notturna Di Madrid
℗ 2005 Alia Vox
Released on: 2005-01-01
 

Jordi Savall · Rolf Lislevand · Luigi Boccherini · Le Concert des Nations
원래는 기타와 현악4중주를 위한 5중주곡(Quintet)인데, Los Angeles Quartet의 기타를 위한 4중주(Quartet), Pepe Romero에 의한 원래의 현악5중주, Julian Bream의 1인2역 역할에 의한 2중주(Duet) 연주곡, 그리고 Bream(기타)과 Malcolm(하프시코드)의 등 여러가지 연주가 있습니다.



루이지 보케리니 기타 5중주 4번 D장조 ‘판당고’
Guitar Quintet No. 4 in D major ‘ Fandango’ G.448
이 곡(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2악장 파스토랄레, 3악장 그라베 아사이 - 판당고)은 보케리니가 1798년에 완성한 곡으로, 9개로 알려진 그의 기타5중주 중에 한 곡이자, 판당고 악장으로 유명해졌다.

5중주 편성을 사랑했던 보케리니
당시 유럽에서 스페인의 문화적 지위는 절정을 지나 하향세에 있을 때였다. 18세기 스페인의 작곡가들은 보통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서 그곳의 음악을 배우고 왔고, 스페인은 다른 나라 출신의 외국 작곡가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었다. 비르투오소 첼리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루이지 보케리니는 같은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발자취를 따라, 어린 시절 스페인으로 이주한다. 보케리니는 1768년 마드리드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2년 뒤 카를로스 왕의 동생이었던 돈 루이스의 음악가로 채용된다. 보케리니는 250여곡의 5중주를 썼는데 그 중 대부분이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두 대의 첼로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현악5중주 분야에 있어서 그의 위치는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스페인에 정착하여 기타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의 오케스트라 작품에는 기타 파트가 들어간 일종의 ‘콘체르탄테’를 작곡하기도 했다. 아마 기타를 위해 작곡된 클래식 작품 중 오늘날 가장 유명한 곡 중에 한 곡은 바로 그의 〈기타5중주 4번 D장조〉일 것이다. 이 곡은 종종 마지막 악장의 이름을 따서 ‘판당고’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스페인의 춤 판당고
가장 널리 알려진 스페인의 춤곡인 판당고는 3박자 계열의 빠른 템포로 이루어진 춤곡이다. 기타와 캐스터네츠(혹은 손뼉)으로 반주된다. 유래는 불확실하나 그 어원에는 ‘운명’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의 ‘fado’(라틴어의 fatum)가 있다. 16세기 초반부터 ‘판당고’라는 이름은 다른 여러 이름으로 당대의 문헌에서 나타나고 이 용어는 당시의 대중들의 노래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당시의 귀족들 사이에서 판당고 열풍이 불면서 스페인에서 성행했던 무대 작품, 발레 등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였다. 18세기에 이르러 판당고는 작곡가들에 의해 기악작품에 한 요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모차르트 역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판당고를 사용하였고, 라벨의 〈볼레로〉 역시 원래의 제목은 “판당고”였다고 한다.

화려하게 펼쳐지는 스페인 기타의 사운드
이 곡은 1798년에 완성되었는데, 이 곡은 사실상 완전하게 작곡된 것이 아니라 보케리니가 이전에 작곡했던 5중주에서 두 곡을 가져와서 다시 ‘편집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5중주는 매력적인 알레그로 마에스토소로 시작한다. 여기에서 첼로의 음향은 장엄하고 특징적으로 들린다. 2악장 파스토랄레는 순수함으로 가득 차있다. 이 악장의 특징은 다이내믹의 측면에서 오로지 피아노(p)와 피아니시모(pp) 사이에서만 움직인다는 데에 있다. 느린 그라베 서주가 끝나면, 영감에 가득 찬 판당고 악장이 이어진다. 이 악장을 통해 스페인의 화려한 기타 문화가 자유롭게 펼쳐짐과 동시에 그 사이에 보케리니 자신의 문화적 유산에서 비롯된 보다 “진지한” 음악양식이 적당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 음악세계 & 음악사연구회(사)



보케리니(L. Boccherini;1743∼1805)의 『기타와 현악을 위한 5중주 4번 라장조, G.448』중 제3악장의 뒷부분 판당고(Fandango)입니다. 판당고란 3박자로 된 빠른 형태의 에스파냐 춤곡을 말합니다. 보케리니는 본디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파리 체재 중 만난 에스파냐 루이스 황태자의 후원을 받게 되자, 오랜 동안 에스파냐에서 음악활동을 계속할 기회가 생겼습니다.(결국 말년에는 마드리드에 눌러 앉아 버렸다.)
이 곡을 쓴 동기에 대해 보케리니는, "당시 왕실 기타리스트인 바실리오 신부가 루이스 황태자를 위해 스카를랏티의 판당고를 멋지게 즉흥 연주하는 것을 듣고 감동한 나머지 그것을 본떠 작곡하였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에스파냐의 민속음악은 확실히 어느 정도 보케리니의 음악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수 있습니다. 첼로 연주에 능숙했던 그가 기타란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본디 이곡은 1788년에 작곡한 [두 개의 첼로를 위한 5중주,op.50-2]의 첫 악장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그가 만든 12개의 기타 5중주곡 중 첫 곡 라장조 3악장에서 다시 인용하였다. 3악장 첫머리 서주의 성격을 띠는 그라베 아싸이(Grave assai)에 이어, 빠른 템포의 판당고는 기타의 힘찬 라스기아도 주법과 첼로의 쉼 사이에 타악기인 캐스터네츠를 울려주어 에스파냐 냄새를 더욱 강렬하게 맛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곡에 대한 대표적인 음반으로 우선 에스파냐 출신의 기타리스트인 페페 로메로가 실내악단과 협연한 연주(성음Philips라이선스-LP와 수입직판-CD)가 단연 손꼽히는데, 리드미컬한 캐스터네츠와 기타 연주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그 밖에 예페스의 연주(성음Gm.라이선스 LP와 CD)와 동구권 음반으로 처음 수입 소개된 젠더의 연주(Hungaroton 수입직판-CD)가 있으며, 3악장만을 기타와 하프시코드를 위한 서주와 판당고로 편곡하여 줄리안 브림이 연주(서울RCA라이선스-LP)한 음반도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이탈리아 출신 보케리니가 에스파냐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만든 에스파냐적인 음악-판당고를 들으시면서 첼로 곡 이외의 또 다른 보케리니의 모습을 느껴봅시다. 물론 에스파냐 민속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단편일 수도 있고.
글출처 : 음악과 산책방에서 발췌




Quintettino for Fandango & Menuetto
보케리니 <판당고와 미뉴엣, 마드리드의 밤 음악>
Luigi Rodolfo Boccherini, 1743~1805
‘루이지 보케리니’는 1743년 이탈리아 ‘루카’에서 태어났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음악교육을 받은 그는 1757년 로마로 가서 첼로와 작곡을 공부하였다. 그 시대의 음악가들이 대체로 그랬듯, 보케리니도 자연스럽게 직업적인 첼로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그의 천재성이 알려지면서 ‘타르티니’의 제자 ‘필리포 만프레디’와 함께 유럽 연주 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1768년 음악가들의 도시 파리에서 현악 4중주곡을 출판하고 이어 2개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3중주곡집을 발표했는데, 이 실내악곡은 당시 파리 악단의 호평을 받아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다. 다음해인 1769년에는 스페인 대사의 초청으로 ‘카를로스 3세’ 국왕의 동생인 ‘돈 루이스’에 의해 궁정 악사로 고용되어 마드리드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왕이 그의 새로운 삼중주곡의 한 악절에 대해 고치도록 명령하자, 자존심이 상한 그는 오히려 그 악정을 더 늘이는 바람에 곧 해고되었다. 그러나 천성이 자유로운 음악가였던 그는 스페인의 민속음악을 자신의 실내악에 삽입함으로써 그의 관심이 궁정보다는 민중의 음악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곡은 그가 마드리드에 있을 때, 작곡한 기타 5중주곡으로 제4악장에 삽입된 판당고이다.

Guitar Quintet in D major, G.448 'Fandango'
보케리니 <기타5중주 중 4악장 '판당고'>
판당고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민속 무용곡 중 하나이다. 18세기 상류 귀족 사이에 유행하던 이 춤곡이 각 지방의 민속무용으로 전해졌는데, 특히 안달루시아 지방의 판당고가 유명하다. 판당고의 리듬은 경쾌한 3박자계로, 독특한 악센트를 가진 6박으로 이루어지는데, <판당고 그란데>와 <판당고 치코> 등 두 종류가 있다. 전자는 깊고 격렬한 표현으로 리듬은 신축성이 자유로운데 반해, 후자는 서민적이고 경쾌한 리듬이 특징이다. 클래식음악에서는 보케리니 외에도 글룩이 발레 <돈환>에서,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 제3막 피날레에서,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스페인 기상곡>에서, 그라나도스는 <고예스카스>에서 판당고를 채용하고 있다.

La Musica Notturna delle Strade di Madrid Op.30 No.6 -G.324
보케리니 <마드리드 거리의 밤 음악>
마드리드 거리의 음악을 수용한 <마드리드 거리의 밤 음악>도 민중의 음악을 수용한 것이다. 곡은 모두 7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졌는데, 먼저 "저녁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로 시작한다. 현악기가 피치카토로 종소리를 묘사한다. 이어 "군인들의 북소리"가 이어지고, 다음으로 "눈 먼 맹인들의 미뉴엣"은 생기 넘치는 미뉴엣이 신선하다. 다음은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로사리오 기도"다. 경건한 기도를 올리는 대목에선 첼로의 낮은 화성이 기도를 묘사한다. 이어 "거리의 노래"는 첼로의 노래하는 선율이 정겹다. 다음으로 "군인들의 북소리"가 다시 나온다. 끝으로 "통금을 알리는 야경꾼들의 행진"으로 마치는데, 곡은 시종일관 밝게 연주되는 묘사음악의 전형이다.
그의 작품은 현악4중주곡을 중심으로 한 실내악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데, 특히 첼로의 역할증대에 기여한 공적은 뛰어나다. 그의 대부분의 실내악곡들은 하이든이 확립한 모델을 따르고 있지만, 하이든보다 이전에 활동하던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한 첼로 연주자였던 ‘죠반니 바티스타 치리(1724–1808)’의 작품에서 보케리니 스타일의 원류가 보이기도 한다. 뛰어난 첼로 연주자였던 보케리니는 종종 바이올린 곡을 음높이를 조절해 첼로로 연주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는 바이올린 주자가 부재중일 때, 첼로로 바이올린을 대신하기 위한 기술이었다고 한다. 단순 저음악기에 불과했던 첼로를 독주악기로서 기능적 역할을 가능하게 한 그의 업적은 그가 첼로를 잘 다룰 줄 아는 연주자였기에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작품으로는 100곡이 넘는 현악 5중주곡과 12곡의 기타 오중주곡, 현과 플루트를 위한 5중주곡(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를 위해 작곡)이 18곡, 6중주곡이 16곡, 8중주곡이 2곡, 그리고 백여 곡의 현악 4중주, 54곡의 현악 3중주, 19곡의 첼로 소나타가 있으며,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는 30여곡의 교향곡과 12개의 첼로 협주곡이 있으며, 종교음악으로 오라토리오 2곡, '스타바트 마테르'와 '크리스마스 칸타타'등 칸타타가 3곡이 있다.
그의 곡 가운데 현악 5중주 E장조, Op.11-5번의 ‘미뉴에트’와 첼로 협주곡 제9번 Bb장조가 특히 유명하며, 곡상은 궁정풍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그의 작품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널리 애호되었으나, 하이든을 중심으로 한 ‘빈’의 기악음악 양식의 발전과 이태리 오페라의 열기에 가려 점점 잊혀 지다가 20세기에 들어와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String Quintet No.5 in E major, Op.11 -G.275 ‘Minuetto’
보케리니 <현악5중주 제5번 3악장 '미뉴엣'>
보케리니의 현악5중주 중 제3악장 <미뉴엣>은 프랑스 궁중에서 쓰였던 가볍고 우아한 4분의 3박자의 화려한 무도회용 음악이다. ‘작은 걸음’이라는 프랑스 말에서 유래된 미뉴엣은 16세기 프랑스의 민속 무도곡에서 발전하여 ‘루이 14세’의 궁정무도회에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음악적으로는 모두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조용한 3박자와 분명한 화성적 구조, 무용적인 요소의 우아함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Fandango
18세기 초엽에 발생하였다. 플라멩코음악에서도 대표적인 것으로 춤은 대개 캐스터네츠를 손에 든 한 쌍의 남녀가 기타와 노래가 교체되는 반주에 맞추어 춘다. 음악은 빠르거나 또는 보통 속도의 3박자이며 말라게냐(말라가지방) ·그라나디나(그라나다지방) ·무르시아나(무르시아지방) 등은 모두 판당고가 지방에 따라 변화한 것이다. 18세기 후반 글루크가 발레 《돈환》(1761)에서, 모차르트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1786)에서 판당고의 선율을 쓰고 있으며 근대에는 림스키코르사코프, 알베니스, 그라나도스, 파야 등이 그들의 작품 속에 이를 많이 도입하고 있다.


Boccherini, Luigi [1743.2.19~1805.5.28]
이탈리아의 작곡가 ·첼로 연주자.
국적 : 이탈리아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루카
콘트라베이스 주자인 아버지로부터 음악교육을 받은 후, 1757년 로마에 유학하였다. 그 후 첼로 주자로 독립, 바이올린 주자인 만프레디와 연주여행을 하여 파리 등지에서 호평을 받고 이어 에스파냐의 궁정악사가 되었으나, 1787년 이후는 베를린에서 궁정작곡가로서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를 위한 작곡에만 전념하였다. 프로이센왕 사후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갔으나 에스파냐궁정의 냉대로 빈곤 속에 마드리드에서 죽었다. 전에는 미뉴에트만으로 알려졌으나 오늘날에는 교향곡, 첼로협주곡, 현(弦) 또는 현과 피아노를 위한 실내악 등의 작품을 통하여 F.J.하이든을 잇는 세대의 고전파작곡가로 높이 평가된다. 보케리니는 이태리의 Lucca에서 성악가와 콘트라베이스 주자였던 아버지 레오폴드 보케리니(Leopold Boccherini)의 일곱 자녀 중 세 번째로 태어나 아버지 밑에서 기초적인 작곡과 첼로를 배웠다.
1757년 공부를 위해 로마에 가 코렐리와 팔레스티나 음악을 접하고 감동을 받는다. 1761년 다시 루카로 돌아와 시 관현악단의 첼로주자로 일하며 당시 바이올린 주자였던 만프레디(Filippino Manfredi)와 같이 빈, 파리등 유럽의 주요 도시로 연주여행을 다녔다. 그들의 연주는 노래하듯한 아름다운 소리라는 반응을 얻으며, 작곡가로서도 명성을 얻는다. 두 음악가는 1769년 스페인의 Madrid로 갔고, 보케리니는 스페인 왕자의 후원을 받게되어 그를 위해 실내악 곡을 남긴다. 왕자의 죽음(1785년) 이후 그는 몇 년간 스페인 왕의 오르간 주자로 일하나 1787년부터 첼로를 연주했던 독일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Friedrich Wilhelm II) 밑에서 궁정작곡가란 칭호를 받으며 1797년까지 봉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그는 궁핍한 환경에서 작곡생활을 하며 마드리드에서 생을 마친다. 그의 유골은 1927년 출생지인 루카로 옮겨졌고 성 프란체스코(Francesco) 교회에 영예롭게 안치되었다.
그의 작품양식은 전형적인 이태리 기악음악과 당대의 표현 양식을 보여준다. 그는 갈랑 양식의 선율과 비르투오스한 기법을 잘 융합하고 섬세한 다이내믹 기법을 살렸다. 그의 선율은 단순하고 우아하면서도, 힘있고 격정적인 표현도 지니고 있다. 그는 하이든의 영향 없이 독자적으로 현악4중주 기법을 이루었으며, 첼로 부분이 자주 테너 음역에서 부각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후기 현악 4중주는 오케스트라 적으로 확장되고 형식과 조성에서 비관습적인 어법을 보여준다. 그의 현악5중주는 특히 모차르트에게 영향을 미쳤다. 6개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Op.5(1768)는 주제적 소재가 두 악기의 성부에 균형 있게 분포되어 서로 대화하듯 진행한다.
그의 작품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널리 애호되었으나, 빈의 기악음악 양식의 발전과 이태리에서의 오페라에 대한 압도적인 관심의 그늘에 가려져 잊혀지다 20세기에 들어와 올바른 평가를 받게 되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지고 있다.
그가 남긴 대략 400개에 이르는 작품은 소수의 오라토리오, 칸타타, 미사와 드라마 등의 성악곡을 제외하고 대부분 기악곡을 위해 썼다. 기악곡 중에서도 실내악을 위한 작품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대략 30개의 심포니, 2개의 8중주, 16개의 6중주, 약 125개의 현악5중주, 18개의 풀룻 혹은 오보에 5중주, 6개의 피아노 5중주, 약 100개의 현악4중주, 약 50개의 현악3중주, 12개의 현악2중주, 6개의 피아노와 바이올린 소나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