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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 공부해보아요

Schubert : Auf dem Wasser zu singen D774 · Elly Ameling · Rudolf Jansen



Schubert : Auf dem Wasser zu singen D774 · Elly Ameling · Rudolf Jansen



Schubert : Auf dem Wasser zu singen D774
슈베르트 물 위에서 노래함 D.774
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오스트리아

Auf dem Wasser zu singen, D. 774

Elly Ameling Sings Schubert
℗ Brilliant Classics
Released on: 2014-12-12

Elly Ameling · Rudolf Jansen
     
물 위에서 노래함 (D.774)
Auf dem Wasser zu Singen, D 774
슈베르트의 가곡 <물 위에서 노래함>은 그의 가곡 창작열이 분수처럼 쏟아지던 1823년 작곡되었다. 이 곡은 슈톨베르크 백작(1750-1819)의 시를 사용하였는데, 그는 시인이자, 법률가로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사람이며 괴테와도 친한 사람이었다. 이 시는 3절로 된 유절 형식으로 ‘적당한 빠르기’라는 템포 지시를 가지고 있다. 곡은 저녁 무렵의 뱃놀이를 노래한 것인데, 흐르는 물소리를 묘사적으로 다룬 32분 음표의 피아노 반주 위에 흐르는 듯 아름다운 선율이 노래된다. 노래는 선율적인 것과 리듬적인 부분의 결합으로 교묘한 효과를 내고, 거기에 조바꿈의 기교를 더하여 애상적인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제1절) 물결이 빛나는 속을 백조처럼 작은 배가 달려간다. 빛나는 물결 위를 내 마음도 달려간다. 작은 배를 둘러싸고 석양 빛이 춤추고 있다.
(제2절) 서쪽 숲 위의 붉은 빛은 우리들을 부르고, 동쪽 숲가지 밑에 창포가 붉게 흔들거리고 있다. 빨간 빛 속에서 내 마음은 숨을 쉰다.
(제3절) 시간은 젖은 날개로 날아간다. 내일도 또, 어제, 오늘과 같이. 나도 그 빛나는 날개를 타고 날아갈 것이다.



리스트는 세상의 모든 음악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하리라 마음먹었다 할 정도로 많은 음악들을 편곡하였다. 피아노 독주로는 불가능하리라 할 곡인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과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편곡하기도 했다. 그뿐아니라 슈베르트의 많은 가곡들을 편곡하였는데, 그 중에서 아래의 '물 위에서 노래함'은 특이할만큼 아름다운 편곡이 돋보인다. 편곡이 원곡보다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로 서정적이다. 예전에 누군가가 피아노 독주는 쓸쓸한 곡이라 했다.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이 곡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단순히 소품으로 넘어가기엔 너무나 서글프고 아름다운 음악. 조르주 불레의 연주역시 더없이 탐미적이다.

Mitten im Schimmer der spiegelnden Wellen
Gleitet, wie Schwäne, der wankende Kahn
Ach, auf der Freude sanftschimmernden Wellen
Gleitet die Seele dahin wie der Kahn
Denn von dem Himmel herab auf die Wellen
Tanzet das Abendrot rund um den Kahn.

Über den Wipfeln des westlichen Haines,
Winket uns freundlich der rötliche Schein
Unter den Zweigen des östlichen Haines
Säuselt der Kalmus in rötlichen Schein
Freude des Himmels und Ruhe des Haines
Atmet die Seel’im errötenden Schein.

Ach, es entschwindet mit tauigem Flügel
Mir auf den wiegenden Wellen die Zeit.
Morgen entschwinde mit schimmerndem Flügel
Wieder wie gestern und heute die Zeit,
Bis ich auf höherem strahlenden Flügel
Selber entschwinde der wechselnden Zeit.
거울처럼 비추는 물결의 빛 가운데
백조처럼 흔들리며 미끄러지는 작은 배.
아, 기쁨으로 은은히 빛나는 물결 위에
내 마음도 그 배처럼 미끄러져 가네.
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저녁 햇살은
배를 에워싸고 물결 위에서 춤추네.

서쪽 숲의 나무들 위에서
붉은 햇살이 정답게 손짓하니,
동쪽 숲에선 나무 가지들 아래
창포가 붉은 빛을 받고 살랑거리네.
내 영혼은 붉은 햇살 속에서
하늘의 기쁨과 숲의 안식을 들이마시네.

아, 시간은 이슬의 날개를 달고
흔들리는 물결위로 사라져 가는구나.
시간은 내일도 빛나는 날개로
어제와 오늘처럼 다시 사라지겠지.
마침내 나도 고귀하고 찬란한 날개 달고
변화하는 시간을 떠나서 사라지겠지



방랑자처럼 살다 간 예술가곡의 왕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Peter Schubert
프란츠 슈베르트는 1797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나타내 8살 때부터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 오르간을 배우며 음악의 기초를 다졌다. 11살이던 1808년, 슈베르트는 왕실 예배당의 소년 성가대원을 교육하는 국립신학교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훌륭한 교사로부터 수준 높은 음악교육을 받았지만, 음악 이외의 과목에서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견디다 못한 슈베르트는 1813년에 국립신학교를 그만두었다. 그 후 교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성 안나 사범학교에 들어갔으며, 이듬해 아버지가 운영하는 학교의 보조교사로 취직했다. 이해에 그는 미사곡 제1번과 괴테의 시에 의한 가곡 〈물레질하는 그레트헨(Gretchen am Spinnarde)〉 등을 작곡했다.
18살 때인 1815년은 슈베르트의 일생에 있어서 보기 드문 다작(多作)의 해였다. 이 한 해 동안 〈들장미(Heidenröslein)〉, 〈마왕(Erlkönig)〉, 〈끊임없는 사랑〉을 비롯해 약 145개의 가곡과 〈교향곡 제3번〉, 〈현악 4중주 제9번〉 등을 작곡했다. 이 무렵 슈베르트는 쇼버라는 친구를 만났다. 자유분방한 예술가적 기질의 소유자였던 쇼버는 매우 방탕한 생활을 했다. 자기 자신은 그것을 탐미주의적 철학으로 합리화시켰지만, 대다수의 친구들은 그의 방종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슈베르트만은 예외였다. 슈베르트는 나중에 아버지에게 쫓겨난 후 쇼버의 어머니 집에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는데, 바로 이 시기에 쇼버와 함께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매독에 걸렸다. 그럼에도 쇼버에 대한 슈베르트의 우정은 식지 않았다. 예술가적인 재기가 번뜩였던 쇼버는 슈베르트의 예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슈베르트 초기 가곡 중 상당수가 쇼버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슈베르트는 쇼버의 대본으로 〈알폰소와 에스트렐라(Alfonso und Estrella)〉라는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했다.
보조교사 일은 슈베르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었고, 이 일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틀어져 집에서 쫓겨났다. 그 후 그는 쇼버의 어머니 집에 머물며 〈교향곡 제4번 '비극적'〉, 가곡 〈마부 크로노스에게〉, 〈연도〉, 〈자장가〉, 〈방랑자(Der Wanderer)〉 등을 작곡했다. 그 후 쇼버의 동생이 외국에서 돌아와 어머니의 집에서 살게 되자 슈베르트는 그 집에서 나와야 했다. 할 수 없이 그는 다시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학교 일이 너무 많아 작곡에 몰두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자 결국 다시 학교를 그만두었다.
1817년, 슈베르트는 쇼버로부터 미하일 포글이라는 성악가를 소개받았다. 슈베르트의 재능을 인정한 포글은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가난에 시달리는 슈베르트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고, 상류층 모임에서 슈베르트의 가곡을 직접 불러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도록 했다. 바로 이 시기에 〈죽음과 소녀(Der Tod und das Mädchen)〉, 〈음악에 부쳐(An die Musik)〉, 〈송어(Die Forelle)〉와 같은 가곡의 명곡들이 탄생했다. 슈베르트와 포글은 친구이자 음악의 동반자로 많은 일을 함께 했다. 1819년, 두 사람이 함께 슈타이어 마을로 여행을 갔는데, 이때 마을 아마추어 연주자의 요청을 받아 피아노 5중주 〈송어(Piano Quintet in A major 'Trout' op.114 D.667)〉를 작곡했다.
1818년, 슈베르트의 관현악곡 하나가 유료 공개 연주회에서 연주되었으며, 처음으로 그의 작품이 악보로 출판되었다. 이해 7월, 슈베르트는 다시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음악 가정교사로 채용되어, 헝가리에 있는 에스테르하지 궁으로 갔다. 여기서 가곡 몇 곡과 피아노 연탄곡을 작곡했다. 그리고 그해 9월 빈으로 돌아왔다. 이때 다시 학교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으나 뿌리치고 오페라 〈쌍둥이 형제(Die Zwillingsbrüder)〉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빈에서는 로시니가 작곡한 오페레타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었다. 슈베르트 역시 오페라를 작곡하겠다는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1820년, 그는 오페라 〈쌍둥이 형제〉와 음악극 〈마법의 수금〉을 발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럼에도 슈베르트는 평생 오페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오페라는 단 한 작품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가 좋은 대본을 선별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도 알맞은 장소에 놓여야 제 빛을 발하는 법이다. 하지만 슈베르트에게는 그런 능력이 부족했다. 오페라에 있어서는 슈베르트도 자신의 재능을 낭비한 셈이다.
1821년,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곡 〈마왕〉의 악보가 출판되었다. 바로 이해부터 슈베르트 동호회 모임이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슈베르티아데는 '슈베르트의 밤' 혹은 '슈베르트 친구들'이란 뜻이다. 이 모임을 통해 슈베르트는 피아노곡이나 춤곡, 가곡 등을 발표했다.
1823년에 슈베르트는 유난히 극음악을 많이 작곡했다. 음악극 〈반역자들(Die Verschworenen)〉, 오페라 〈피에라브라스(Fierabras)〉, 음악이 있는 로망스 〈로자문데(Rosamunde)〉가 이때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 중 〈로자문데〉만 빈 극장에서 공연되었을 뿐 오페라 작품들은 무대에 오르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머지 분야에서는 좋은 성과가 있었다. 〈물 위에서 노래함〉과 〈그대는 나의 안식〉,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Die schöne Müllerin)〉 같은 가곡과 피아노곡 〈34개의 감상적인 왈츠〉, 〈음악의 순간〉, 〈12개의 독일 무곡〉 등이 쓰였다. 이해에 슈베르트는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1824년, 건강을 회복한 슈베르트는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와 〈아르페지오네 소나타(Arpeggione Sonata a minor D.821)〉를 작곡했다. 이듬해에는 〈피아노 소나타 A장조〉가 악보로 출판되어 북독일과 스위스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1825년부터 슈베르티아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슈베르트의 경제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것이 큰 문제였다. 작품이 악보로 출판되는 일이 조금씩 늘기는 했지만 충분한 수입이 되지는 못했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슈베르트는 1826년 오스트리아 황제의 궁정 예배당 부악장이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1827년, 슈베르트가 존경해 마지않는 작곡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는 그의 장례 행렬에서 횃불을 들었다. 이해에 그는 마지막 연가곡인 〈겨울 나그네(Winterreise)〉를 완성했다.


1828년 1월 28일 밤, 슈파운의 집에서 슈베르티아데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슈베르트는 방대한 구성의 〈교향곡 제9번 '그레이트'〉를 작곡해 빈 악우협회에 제출했으며, 3월 26일에는 슈베르트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공개 연주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친구들이 동분서주한 덕분에 이 연주회에서 예상치 못할 정도로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무렵 슈베르트의 건강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빠져 있었다. 그해 9월 마지막으로 〈현악 5중주 C장조〉를 완성하고, 그로부터 2달 후인 1828년 11월 19일에 3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는 일생 600곡이 넘는 예술가곡을 작곡한 '가곡의 왕'이다. 17살 때 작곡한 〈물레질하는 그레트헨〉을 시작으로 〈들장미〉, 〈마왕〉, 〈음악에 부쳐〉, 〈아베 마리아〉, 〈송어〉, 〈죽음과 소녀〉, 〈세레나데〉 등 수없이 많은 예술가곡의 걸작들을 쏟아 냈다. 슈베르트는 일반적인 가곡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가곡을 모아 놓은 연가곡에도 손을 댔다. 1823년과 1827년에 발표한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는 모두 20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물방앗간 아가씨와 젊은이의 사랑을 그린 소박하고 밝은 작품이다.
반면 말년의 작품인 〈겨울 나그네〉는 허무주의적 낭만주의의 극치를 보여 준다. 이 연가곡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버림받은 젊은이가 추운 겨울날 방랑을 떠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모두 24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연인에게 버림받고 떠나는 나그네의 춥고 어두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대부분의 곡들이 단조로 작곡되었다. 중간에 나그네가 달콤한 봄날을 꿈꾸는 〈봄꿈(Frühlingstraum)〉에서 잠시 밝고 화사한 장조가 나오지만,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피아노가 음산한 단조로 돌아간다. 개들이 쇠사슬을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묘사한 〈마을에서(Im Dorfe)〉와 노인의 손풍금 소리를 묘사한 〈거리의 노악사(Der Leiermann)〉에서 피아노의 쓰임새가 인상적이다. 유명한 곡으로는 성문 앞 우물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부르는 〈보리수(Der Lindenbaum)〉, 나그네의 슬픈 마음을 한탄조로 그린 〈넘쳐흐르는 눈물(Wasserflut)〉이 있다.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에서 슈베르트는 고전주의의 전통을 계승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는 형식과 내용 면에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고전주의 작곡가들의 영향을 보여 준다. 슈베르트는 일생 13편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하지만 스케치만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고, 온전히 번호가 매겨진 교향곡은 8개뿐이다. 현재는 이 중에서 〈교향곡 제8번 '미완성(Unfinished)'〉과 〈교향곡 제9번 '그레이트(Great)'〉만 주로 연주된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미완성'은 1822년 작으로 1악장과 2악장만 있기 때문에 '미완성'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슈베르트가 왜 곡을 쓰다가 말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제1주제는 오보에와 클라리넷, 제2주제는 첼로가 제시한다. 두 개의 주제 모두 가요풍의 서정적인 멜로디를 갖고 있다. 이어지는 제2악장은 느린 템포의 2부 형식으로 제1주제는 혼과 파곳, 제2주제는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연주한다. 2부에서는 1부에 나온 것을 조성과 악기 편성을 달리해서 재현한다.
슈베르트의 실내악곡으로는 현악 4중주와 피아노 3중주, 피아노 5중주, 현악 5중주, 현악 8중주 등이 있다. 현악 4중주로는 극음악 〈로자문데〉의 선율을 느린 악장에 채용한 제13번 '로자문데', 가곡 〈죽음과 소녀〉의 멜로디를 2악장 주제 선율로 채택한 제14번 '죽음과 소녀'가 유명하다. 가곡 선율을 주제로 작곡한 실내악으로는 이 외에도 피아노 5중주 〈송어〉가 있다. 이 곡은 1819년에 작곡한 것으로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바스가 연주한다. 모두 5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4악장이 가곡 〈송어〉의 선율을 주제로 한 변주곡 형식으로 되어 있다. 변주는 여섯 번에 걸쳐 이루어지며, 연주에 참가하는 다섯 악기 모두가 각각의 변주곡에서 돌아가며 주제 선율을 연주한다.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한 독주곡도 슈베르트의 작품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슈베르트는 모두 21곡의 피아노 소나타와 8개의 즉흥곡, 〈음악의 순간〉, 〈방랑자 환상곡〉, 〈군대행진곡〉 등을 남겼다. 그 밖의 독주곡으로 첼로의 전신인 아르페지오네를 위해 작곡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있다. 가곡집으로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유작들을 한데 묶어 놓은 〈백조의 노래〉가 있다.